남자가 지내고 있는 방은 주변 방에 비해 꽤 호화로운 곳으로 압도적으로 많은 책의 수가 특징이다. 책꽃이 외의 가구는 정말 필요한 만큼만 갖춰져있고, 그도 그것에 대해 딱히 불편함을 느끼고 있지는 않은 것 같다.
그는 TBX-02 사건의 직접적인 연관자로, 우습게도 태연히 침대에 걸터앉은 상태에서 나를 맞이했다. 나는 근처에 있는 의자를 끌어 그를 마주보는 형태로 앉고는 약속대로 그에게서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자신을 팔켄 르쉐르라고 소개한 남자는 한 번 작게 웃더니 말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반가워요. 미리안이라고 했었나요? 아, 네. 그렇군요. 그랑 친하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이곳까지 걸음을 하셨다니, 그 사람도 정말 사교성 한 번 더럽게 없네요!
말해두지만 나는 로쏘와는 사적인 관계는 아니었어요. 다만 공적으로 그렇게 마주칠 수가 있어야지. 자연스럽게 이것저것 보고 듣게 되는 것이 당연해요. 음, 어디서부터 말해야하지. 나는 그의 후임으로 대체로 로쏘의 스케쥴에 간섭을 하거나 잔임무를 맡고는 했어요. 몇 년간 밑에서 일했지만 그에 대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역시 '무심하다'네요. 역사상 가장 물의를 일으킨 사람을 칭하기에는 조금 진부한 감이 있나요? 그런데 어쩌겠어요. 그는 진짜 무심했어요. 자기 말고는 신경도 안쓰는 데다가 관심없는 것에는 가차없이 잘라내기 일쑤였거든요. 그게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뭐, 세간에서는 천재라고 불리우기도 하고, 어쩔 때는 그저 미친 공학자로 불리기도 했었어요. 헬즈벨을 뭐라고 부르죠? 아, 요즘은 TBX-02라고 부르는 군요. 거 참 어렵게도 부르네요. 그냥 그 무기는 말 그대로 지옥의 종소리예요. 한 번 터지면 그냥 그대로 죽는구나 해야하죠.
고작 총알만한 폭탄을 마을의 광장에 심어놓으면, 이 폭탄 안에 있던 나노크기의 입자들이 여기저기로 튀어 아무 물체에나 달라붙죠. 이것이 무서운 이유는 무한한 복제가 가능하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물에 붙었다가, 여기저기로 옮겨가요. 정확히 가장 먼저 입자가 달라붙은 후로부터 24시간까지 무한히 복제했다가 일제히 터져버려요. 콰과광! ...하고. 폭발력이 특징이지만 폭발과 함께 가스가 미량 살포되는데, 이것이 보라색을 띈단 말이에요? 그래서 헬즈벨이라고 불러요. 지옥에서 끌어올린 것 같죠. 맞은 사람을 지옥에 보내버리기도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가 그런 병기를 생산해낼 줄은 몰랐어요. 원래 관심있던 분야는 그쪽이 아니었거든요. 무기개발보다는 되려 생물을 자르고 이어붙이는 실험이 더 그의 입맛에 맞았죠. 모르모트의 각막을 벗겨내고 개구리의 심장을 떼어내는 일이요.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예상이 가지 않는 건 아니에요. ...람? 아니에요. 람은 아니에요. 그는 람을 충분히 거스를 수 있었어요. 내 말 이해하겠어요?
그는 자신에게 불이익이 되는 걸 알면서도 폭탄을 터트렸다고요.
이봐요, 미리안. 당신도 그와 알고 지내던 사이잖아요. 그는 이기적이었던 게 아니었나요? 무엇이 그를 바꾸었는지, 당신은 이해할 수 있어요? 그 잘난 로쏘 덴히도를 바꾼 것이 무엇이었는지. ... ....나는 알아요.
그것은,
환영이었어요.
악몽의 환영이죠. 어딘가 인공적인 여자였어요. 아니, 정말 그저 홀로그램일 뿐이지만 그녀는 정말 어딘가 인간미를 쏙 빼놓은 느낌이었죠.
그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한 마디 툭 던져놓듯이 중얼거렸다. 마르그리드라고 해요, 그 여자의 이름.
그는 그녀에게 그저 흥미만 느꼈던 것 같아요. 이것저것 실험도 하게 해주는 조건으로 그녀에게 협력했죠. 다만 조금이라도 질린다면 당장이라도 관두겠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수긍했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로쏘는 그녀를 거스를 수 없었어요. 물론 그녀가 그에게 무언가의 압박을 했다는 건 아니에요. 이게 무슨 소설같은 소리인지.. 정말 내 생각일 뿐이지만, 그는 그녀에게서 결핍된 무언가를 찾으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굳이 몰라도 됐을 텐데 그토록 그가 그것에 집착했던 것은 오기보다는, 호기심이에요. 결론적으로 그는 그 호기심때문에 파멸했죠.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헬즈벨의 개발을 부탁한 것도 그녀예요. 어떤 장면일지 눈에 뻔하네요. 귓가에 나지막히 속삭이고, 웃는 거죠. 아. 오해하지 말아요. 로쏘가 미인계에 약하다는 것은 절대 아니니까. 그건 그녀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그녀에게 생화학무기가 필요했던 이유는 지금도 모르겠네요. 예상가는 게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가 안가거든요. 아무튼 헬즈벨은 성공적으로 만들어졌고, 성공리에 터졌어요. 2만명이 죽고 32만명이 부상을 입었죠. 겨우 총알 하나로 벌어진 일이에요. 동시사망자가 발생하자마자 그녀는 사라졌고 나는 붙잡혀 조서를 썼죠. 로쏘와 가장 오랫동안 일했던 건 나고, 그나마 가장 친한 것도 나니까요.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너무 감상적인 느낌이었나요? 어쩔 수 없어요. 내가 아는 건 로쏘는 그 여자에게 결핍된 무언가를 찾으려고 했고, 그로 인해 지금 대형살인마가 되었다는 것 뿐이니까.
아, 당신은 그 총알만한 폭탄이 어디가 시발점이었는지 알고나 있나요?
한 대학교수의 주머니예요.
교수는 혼자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었는데, 오 년 전에 아내를 잃었죠. 아내의 이름이 마르그리드였어요. 와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말이 안 돼죠. 그래서 말하기를 조금 망설였어요. 5년전에 죽은 교수의 아내가 복수를 위해서 천재엔지니어를 꼬드겨 치명적인 병기를 만들게 했다? 정신병자같은 소리잖아요. 그래서 생화학무기가 필요했던 이유를 모르겠다고 한 거예요. 뭐... 다른 사람들이 겪었다면 귀신이라고 불렀겠지만, 나는 그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아요. 귀신이라기엔 묘했고 또 똑똑했거든요. 그래서 환영이라고 불러요. 악몽의 환영.
저기요, 미리안. 내가 정말 알고 싶은 건 한 가지예요. 그가 그녀에게서 찾으려고 했던 것. 대체 그는 무엇때문에 그토록 절박하게 굴었죠? 얻은 것은 있나요? 나는 그냥.. 그냥 그가 좀 안된 것 같아요.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로쏘가 살아있다면 말입니다. 자신의 처지가 좀 나아졌길 바래요.
그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살짝 어색하게 웃었다. 나는 이야기가 다 끝났다고 생각해 가볍게 그에게 목례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곳을 벗어나려던 찰나, 그는 나를 불러세워 묻는다. 미리안. 나를 원망해?
대답하지 않고 그가 침대에 걸터앉아있는 그 방의 문을 닫고 문에 달린 이름표를 바라본다. 비아본 정신병원이라는 자그마한 글씨 아래에 로쏘 덴히도라는 글씨가 프린팅되어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