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입을 열어 자신이 생각한 바를 죽 나열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긴장한 듯 귀를 기울여 경청하기 시작한다. 탐정은 이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자신이 명성을 쌓아갈 수록, 멋대로 내뱉은 말마저 신빙성을 얻어감에 작게나마 우월감을 느꼈다. 악취미라 비난해도 좋았다. 탐정은 어딘가 설득력이 있어보이는 사람이었다. 처음에는 그닥 내키지않아하던 사람들도 탐정의 주절거림에 내심 경청하더니, 어느새 모든 이가 탐정을 주목하게 되었다.
탐정은 모든 말을 마치고 마침내 한 사람을 쏘아보며 말을 이었다. 말을 마무리하는 몸짓이 오케스트라의 마에스트로의 그것과 흡사했다. 모든 이가 범죄의 지휘자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이동했다. 지목한 것은 다름 아닌…
……탐정은 조바심을 냈다. 그럴만도 한 것이, 모든 이가 입을 모아 탐정의 지목을 부정하였기 때문이었다. 지목한 자는 알리바이가 밝혀졌고 분위기는 싸해졌다. 탐정은 굳이 그 자가 맞다고 밀어붙이지는 않았다. 괜시리 나서 사람들의 의심을 사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시금 말하자면,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탐정은 한국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소문난 탐정이었다. 변변찮은 조수 하나 없이 여태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전부 해결하고 다니는 그런 탐정. 자신의 감정적인 행동 하나로 쌓아왔던 모든 것을 망칠 정도로 탐정은 멍청하지 않았다.
빠르게 머리를 굴린다. 어찌되었건 범인이 잡히지 않은 것은 사실이었다. 다시금 조바심이 난다. 드라마를 평소에 즐겨보던 탐정은 멋대로 이쯤에서 결말이 나야한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고, 지금이 그때였다. 허나 사건은 마무리되지 않았고, 자신의 추리에 흠집이 나려는 위기까지 찾아왔다.
탐정이 말이 없자 사람들의 시선이 이리저리 오가기 시작했다. 옅은 기류가 흘렀다. 이내 수근거리는 소리가 겹쳐진다. 눈치를 보던 한 소년이 입을 열었다.
당신의 추리는 틀렸어요. 어떻게 된 일이죠?
애초에 이런 밀실에서 살인을 저지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범인을 짚기 어려운 것도 무리는 아니었지만… 탐정은 틀리지 않았다. 기억을 되짚었다. 지난 사건을 모두 해결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대답해주세요, 탐정님.
지난 사건을 모두 해결했던
자신을 떠올린다.
무언가 알고 있는 거죠?
지난 사건을 떠올린다.
탐정님.
탐정은 틀리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이 자신이었으므로.
탐정은 지난 사건을 모두 저질렀던 자신을 떠올린다. 어린 아이만 골라 찔러죽였던 자신과 독을 넣어놓은 물을 얼려 아무것도 모르던 여성을 독살시킨 자신. 팔과 다리에만 정확히 24발의 총을 박아넣었던 자신. 한 가정의 가장을 목매달아버렸던 자신. 등산객을 밀어 추락사시켰던 자신. 아홉살배기 남자아이가 혼자 있는 집을 불살랐던 자신. 자신. 자신. 자신. 전부 자신이었다.
피해자들의 시선을 전부 기억한다. 그 자리에서 오열하거나, 주저앉거나, 결백하다고 소리지르다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실려나갔다. 모두가 탐정을 연민하곤 했었다. 불쌍한 사람. 사건을 해결했을 뿐인데 저주까지 퍼붓다니. 이래서 범죄자들은….
탐정은 범죄를 저지르고 멋대로 죄를 뒤집어씌우고, 가엾은 죄인이 자신에게 폭언을 내뱉고 실려가며 동정받는 것을 즐겼다. 탐정은 그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자신이 명성을 쌓아갈 수록, 멋대로 내뱉은 말마저 신빙성을 얻어감에 작게나마 우월감을 느꼈다. 악취미라고 불러도 좋았다…….
자신도 모르게 조소를 지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흘러갔다. 이야기가 끝나기까지 얼마나 남았지? 더 이상 질질 끌 수는 없었다. 탐정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겨우 종이 3장 정도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3장 내에 그들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목숨을 끊어야지. 탐정은 허리춤에 달린 리볼버를 의식했다. 서늘하다. 나는 당신들을 속였고 탐정은 틀리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