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는 호화롭지 않다. 하지만 빈곤하지도 않았다. 쉬폰은 비르비타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두 번째 만남이었고, 비르비타는 거절하지 않았다. 쉬폰은 입이 짧았고 또 식사량도 적었기 때문에 작은 양의 식사들이 여러 종류 나열되었다. 다른 재료들을 '맛보는' 수준의 식사였다. 쉬폰은 이를 프랑스식 식사라고 거창하게 말했다.
앙트레, 거위의 간을 얇게 저며 버무린 전채요리. 날씬한 잔에 반틈 적당히 따른 샹파뉴. 흰 살 생선을 굵은 소금으로 덮어 오븐에 구운 푸아송.. 또는 올리브와 마늘이 들어간 오리 아래에 빵이 깔려있는 (쉬폰은 식사 전에 이것을 크루통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요리가 차례에 맞춰서 식탁에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비르비타는 적당량을 덜기도 하고 덜지 않기도 하면서 천천히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쉬폰은 음식이 나올 때마다 조곤조곤 요리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잔에 지금 따르는 것은 달지 않은 맛이 날 것입니다. 드라이 와인이라고도 불립니다. 다른 잔에 따르는 것은 평범한 포도주 같겠지만 조금 비쌉니다. 45년산 빈티지죠. 한 방울, 한 방울이 아까울 수도 있을 겁니다. ...이 오리구이의 아래에는 철망이 깔려있죠. 기름이 아래에 떨어지면서 빵을 적십니다. 간단하게 크루통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드실 지는 모르겠지만... 아, 쉬폰이 말을 잠시 멈추었다.
제가 소고기는 별로 안 좋아해서, 요리에서 빠졌군요. 이는 사과드리겠습니다.
괜찮아요. 그나저나 잔은 하나가 아니네요?
비르비타는 답을 알고 있는 질문을 하듯 웃었다. 쉬폰도 답을 아는 아이에게 설명하듯 대답했다. 총 네 잔이죠. 가장 긴 잔이 샹파뉴, 작은 잔이 백포도주, 가장 큰 잔이 물을 따르는 잔, 그 가운데에 있는 것은..
적포도주. 비르비타가 말을 자르고 대답했다. 센스가 있네요, 겉보기와는 다르게. 그녀가 검지를 들어 잔의 입구를 천천히 쓸었다. 손가락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45년산, 품질도 좋고 희귀하기도 하죠.
술, 잘 마셔요?
아뇨. 못 마십니다. 쉬폰은 잔을 들어보였다. 입도 대지 않은 잔에 반쯤 와인이 차있었다. 그가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속된 말로 뭐라고 하죠? 돈지랄?
식사와 별반 다르지 않게 디저트도 그리 화려하진 않았다. 가벼운 아이스크림 비슷한 음식이 나왔고, 쉬폰은 다시 설명했다. 소르베라고 부르죠. 셔벗이라고도 합니다. 우유를 넣지 않은 과즙을 얼린 겁니다. 비르비타는 깨끗하게 작은 잔을 비웠다.
이 다음은 크기가 좀 크네요?
디저트의 메인이라서 말입니다. 고용인이 조용히 비르비타 앞에 접시를 놓았다. 덮개를 열자 동그란 것 두개가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비르비타는 굴러가는 동그라미들을 눈으로 쫓았다. 원의 뒷편에 들러붙은 건더기들을 군살없이 깨끗하게 제거하고 올려놓은 탓에 데구르르 하고 저만치 굴러갔다.
이건 뭐죠?
두 번째 디저트입니다. 데세르라고도 합니다. 본 요리 이후에 샐러드, 치즈를 먹고 단 음식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지만.. 앞에서 먹었던 소르베보다는 덜 달겁니다. 이 부분에 유감을 표합니다. 하지만 이걸 다 드신다면 과일을 준비해뒀으니 아마 입가심하기에는 좋을 테죠.
그런 걸 묻는 게 아니에요.
쉬폰이 눈을 감더니 작게 웃었다. 그가 나긋하게 대답했다.
눈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누구의? 쉬폰은 대답하지 않았다. 비르비타는 말을 이어갔다. 원산지도 모르는 것을 먹을 수는 없죠. 비르비타는 접시를 살짝 밀어 먹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했고, 이것이 식사예절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거부의사를 표현하자 쉬폰이 유감이라는 듯 턱을 괴었다.
당신이 좋아할 줄 알았는데.
와인도 언제 만들어졌는지, 어디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죠.
나는.. 비르비타가 몸을 기울였다. 손을 뻗어 쉬폰의 앞머리를 쓸더니 엄지로 가볍게 왼쪽 눈꺼풀을 눌렀다. 당신의 눈이라면 먹을 거예요. 기쁘게. 다만, 튀기는 건 싫더라구요. 쉬폰이 웃었다.